"We all have a tendency to think that the world must conform to our prejudices. The opposite view involves some effort of thought, and most people would die sooner than think – in fact they do so." - Bertrand Russell
뉴스를 보는 것이 버릇이 된 시대이다. 숨 쉬듯 하루에도 내가 보는 화면 곳곳에 뉴스가 날아든다. 당장 어제 버릇처럼 소비한 뉴스의 내용도 곧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보와 뉴스의 홍수. 이따금 제목만 보고 클릭한 기사를 읽다가 다시 언론사의 이름을 확인하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자극적인 제목을 보고 언론사의 이름을 유추하기도 한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로 점철된 뉴스들 사이에서 "사실충실성"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런 오늘날 한스 로슬링의 Factfulness는 정보를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의 지침서이다.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10가지 잘못된 본능에 대해 정리하고, 자신의 경험담을 얹어 쉽고 간결한 어체로 침팬지들보다는 더 정확하게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간략하게 정리해본 저자가 제시한 주의해야 할 10가지 본능은 다음과 같다:
1. 간극 본능 - 사실을 둘로 나누어, 우리와 그들, 부와 가난 등으로 나누어 중간은 무시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단순화 시키는 본능 (흑백논리, ustheming)
2. 부정 본능 - 부정적인 뉴스가 부각되는 오늘,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본능
3. 직선 본능 - 과거에 유지되온 직선적 추세가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본능
4. 공포 본능 - 두려움과 공포에 휩쓸려 냉정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본능
5. 크기 본능 - 큰 숫자 하나에 현혹되어 다각도로 현상을 분석하지 못하고 그 숫자를 단 하나의 근거로 믿는 본능
6. 일반화 본능 - 반복된 경험이나 근거만을 토대로 모든 현상을 하나의 결론으로 일반화시키는 본능
7. 운명 본능 - 어느 집단이나 현상이 변화하지 않고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계속 그 모습을 유지할 것이라 생각하는 본능
8. 단일 본능 - 한가지 관점만을 진리로 받아들여 단순한 생각, 단순한 결론을 계속 차용하는 본능
9. 비난 본능 -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한 사람, 집단 등을 비난하고, 다각도로 그 결과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지 않는 본능
10. 다급함 본능 - 현안의 시급함에 압도되어 문제를 다각도로 분석하지 못하고 결론을 지어버리는 본능
이 열가지의 본능의 뿌리는 선입견과 무의식에 있다. "느낌이지 생각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말이 우리의 본능을 가장 간결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 한정된 맥락 속에서 생각하고 결론지으면, 느낌만 가지고 내린 결론보다 더 부정확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스 로슬링은 때때로 우리의 "지식이 적극적으로 잘못"되었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매일 받아들이는 정보들을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보고, 데이터를 이용해 객관적인 근거에 기초해 받아들여야 비로소 우리의 생각이나 결정은 "사실충실성"을 갖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에도 맥락을 같이하는 부분이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정보가 진실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받아들인다 것. 구태여 듣고있는 이야기가, 읽고 있는 기사가 거짓이라고 상정하고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실 기본값' 경향성을 이용해 버나도 메이도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단계 사기(폰지사기)를 금융당국 감시망까지 뚫고 성공해냈다. 사기의 규모는 650억 달러였고, 피해자 중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인도 다수였다. 증권거래소 위원장까지 역임했던 버나도 메이도프는 나름 권위 있는 전문가였고, 금융위기 전 까지는 꼬박꼬박 10%의 수익률로 신뢰까지 쌓았던 사람이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전문성을 지닌 팩트의 권위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읽는 뉴스들도 마찬가지다. 경제면을 읽다가 "경제성장율이 전 분기 대비 하락했다"고 하면 우리는 의례 '아 경제가 안 좋구나'라고 느낀다. 심지어 이것이 전문가의 말이고 "곧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하면 일말이라도 공포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나라라면 경제성장률은 성수기에는 오르고 비수기에는 떨어지는 경향을 가질 수 있고, 따라서 여름방학을 끼고 있는 3분기에 비해 4분기의 성장률이 떨어지는 현상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뉴스는 통계를 이용해 사실에 충실한 뉴스를 전하고 있는 것 같지만, 때때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다 검증하고 사실충실성에 입각해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역할을 언론에서 어느 정도 해주기 바라는 것이고, 또 언론이 그 역할을 상당 부분 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언론을 "진실"로 일반화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Factfulness의 제언들은 시의적절한 가치를 지닌다. 세상에는 분명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나고, 결국 이 정보를 가려듣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정보를 검증하고 공부해서 세상에 대한 맥락을 넓혀가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주체인 내가 위 열 가지 본능들의 영향을 받아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하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민주주의에서는 비록 미약할지언정, 우리도 문제 해결의 주체이자 주권을 지닌다. 내가 행사하는 한 표나 내가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정확히 알고, 데이터에 기반해 가장 시급한 문제, 가장 필요한 행동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일원으로 중요한 기본 의무이기도 하다. 코로나의 가운데에서 각 국가의 마스크에 대한 인식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정확하게 인식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차이는 도드라지지 않았던가.
사실 책을 덮고 어떻게 이 책을 내 생활에 적용시킬까에 대해 생각했을 때, 좀 막막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이런 본능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동시에, 이런 본능들로부터 매번 나를 해방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으르게 모든 정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이다. 나의 무지를 착취해서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보이스피싱에서부터 보험설계사까지 넘쳐나는 것이 이 세상이다. 나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정보들을 다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당장 증권계좌 하나를 만들어도 읽어야 하는 계약서의 분량과 대답해야 하는 질문의 개수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심지어 나는 이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적도 없다) 하물며 어느 대륙에 몇억 명이 살고 있는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데이터를 찾아보는 노력을 공부의 우선순위 상단으로 올리는 일이 흔쾌하게 실행되지는 않는다.
산뜻하게 마무리해보려고 한 이번 독후감도 마음처럼 딱 떨어지진 않는다. 그래서 그냥 수미쌍관의 형식미를 갖춰 버트랜드 러셀의 다른 말을 인용하면서 남의 말로 시작한 독후감을 게으르게 마무리 하고 세상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진실의 보고, 유튜브를 보러 가기로 한다.
"It has been said that man is a rational animal. All my life I have been searching for evidence which could support this." - Bertrand Russ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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